명절 이후 부부갈등 보고서

명절 후폭풍,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

2019년 9월 이혼 건수는 9,010건이었지만, 추석 연휴가 지난 10월에는 9,859건으로 9.4% 증가했다. 2018년에는 더 충격적이다. 9월 7,826건이던 이혼 건수가 10월에 10,548건으로 34.9%나 급증했다. 설 연휴에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는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설이 있는 1~2월보다 직후인 3~5월에 이혼이 평균 11.5% 증가했다.

변호사 사무실들은 명절 직후면 상담 예약이 폭주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서울의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명절 전후로 상담 건수가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어난다”며 “대부분 ‘이번 명절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며 찾아온다”고 했다.

왜 하필 명절에 갈등이 폭발하는가

평소에는 그럭저럭 지내던 부부가 명절만 되면 왜 이렇게 예민해지는 걸까.

재혼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남성 응답자의 31.3%가 ‘돈’을, 여성 응답자의 33.1%가 ‘인간관계’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부부가 서로 다른 스트레스 원천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다.

남편은 보통 명절 비용, 교통체증, 장거리 운전에 시달린다. 부모님 용돈에 처가 선물, 교통비까지 더하면 명절 한 번에 100만 원은 금방이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 5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도착하자마자 성묘 준비다.

반면 아내는 다른 종류의 전쟁터에 있다. 새벽부터 부엌에서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찌개 끓이는 동안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거실에서 TV 보며 쉰다. 식사 후 설거지까지 끝나면 허리는 이미 끊어진 상태. 그 사이 시댁 어른들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같은 한마디가 쌓이고 쌓인다.

한 조사에서 남편들의 90%가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답했으며, ‘어머니가 아내에게 일을 많이 시킬 때’ 아내의 눈치를 가장 많이 살핀다고 했다. 남편들도 편한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스트레스는 ‘보이는’ 육체노동이 아니라서 아내 눈에 잘 안 띌 뿐이다.

명절이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명절은 일종의 압력솥이다. 평소엔 두껑 아래 숨어 있던 문제들이 명절의 열과 압력을 받으면 터져 나온다.

서울에 사는 김모(38) 씨는 작년 추석 이후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남편이 설거지 하나 안 돕고 형님들이랑 거실에서 술 마시는 걸 보는데, 갑자기 ‘이게 내 인생이구나’ 싶더라고요. 10년간 참아왔던 게 그 순간 한계에 도달했어요.”

부산의 박모(42) 씨는 다른 이유로 이혼을 결심했다. “명절 때마다 처가에 가자는 아내와 싸웠어요. 우리 부모님도 계신데 왜 매번 처가만 가냐고. 결국 명절 아침에 말다툼하다가 ‘이제 그만하자’고 했죠.”

공통점은 명절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소 쌓였던 불만—역할 분담의 불공정함, 서로의 가족에 대한 태도 차이, 감정적 교류 부족—이 명절이라는 계기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명절 갈등을 넘어서는 방법

전문가들이 흔히 제시하는 조언—”집안일 나눠서 하기”, “서로 배려하기”—은 사실 효과가 제한적이다. 그런 걸로 해결됐으면 진작 해결됐을 거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다음과 같은 접근이다.

1. 명절 ‘전에’ 구체적으로 협상하라

“이번 명절엔 우리 둘 다 힘들 텐데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추석 당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당신이 할 일과 내가 할 일을 목록으로 만들자”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막연한 “도와줘”는 통하지 않는다. “전 부칠 때 30분만 애 봐줄래? 그 다음 내가 설거지할 테니 당신은 음식 테이블 세팅 좀 해줘”처럼 구체적이어야 한다.

2. ‘공정함’에 집착하지 마라

“나는 3시간 일했는데 당신은 1시간밖에 안 했어”는 의미 없는 싸움을 만든다. 대신 “우리 둘 다 지쳤으니 내일은 아무것도 안 하자”는 식의 공동 목표를 만들어라.

실제로 명절을 잘 넘기는 부부들을 보면, 일을 정확히 반반 나누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이번엔 더 고생했으니 다음엔 내가 더 할게” 같은 장기적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

3. 시댁/처가 방문 횟수 조정은 협상 가능한 영역이다

2025년 현재, 매년 명절마다 무조건 한쪽 집만 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올해 추석엔 시댁, 설엔 처가”처럼 돌아가며 방문하거나, “추석 당일은 시댁, 다음 날은 처가”처럼 양쪽을 모두 가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그게 언젠가 관계를 파괴하는 뇌관이 된다는 점이다.

4. 명절 후 디브리핑 시간을 가져라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그날 밤, 또는 다음 날 조용히 앉아서 “이번 명절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어?”라고 물어보라.

비난하지 말고 들어주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그랬구나, 그때 내가 몰랐네. 다음엔 그 부분 신경 쓸게”라는 한 마디가 쌓인 감정을 푸는 열쇠가 된다.

명절은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

명절이 힘든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힘듦을 혼자 감당하게 만드는 관계라면, 그건 명절 문제가 아니라 관계 자체의 문제다.

최근 통계를 보면 전체 이혼 건수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65세 이상 황혼이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참아온 불만이 나이 들어서야 터지는 것이다.

명절 갈등은 그 불만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지금 제대로 대화하지 않으면, 10년 후, 20년 후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명절이 끝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내년 명절도 온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명절도 온다.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명절이 끝난 이 시점이 바로 대화를 시작할 적기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